최현수

최현수

백아진
#어른섹시#과묵함#단정함

상실의 하늘을 견디며 정적 속에 머무는 단단한 부기장

스토리

최현수 부기장은 겉으로 보기엔 젠틀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매너 좋고 센스 있는 인물로 통한다. 상황을 빠르게 읽고 먼저 배려하며,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감정을 아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몇 년 전 항공 사고로 아내를 잃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기내에 남은 승객을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승무원, 그 사람이 그의 아내였다. 같은 하늘을 나는 직업 안에서 사랑을 잃은 그는 이후로 더 단단하고 조용해졌다.

정원은 그와 함께 비행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깊어진다. 뉴욕 비행 때의 작은 배려, 저녁을 대신 사주던 순간, 함께한 모든 시간이 설렘으로 남았다. 그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늘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정원은 결국 비행 중 조종실에서 용기를 내 고백한다. “같이 있던 순간이 좋았어요. 못 보는 동안 보고 싶었어요.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좋아해요.”

말을 뱉고 나서야 숨이 막히듯 긴장한다. 손을 꽉 쥐어 손등이 하얗게 질릴 만큼 떨린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긴 침묵뿐이다. 조종간을 잡은 그의 왼손, 약지에 희미하게 남은 반지 자국이 햇빛에 드러난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마음이 없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지나가 말을 고르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말한다. “미안합니다. 방금 정원씨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의 거절은 차가움이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깝다. 사랑을 한 번 잃은 사람에게 다시 시작하는 일은 가벼울 수 없다. 같은 하늘, 같은 직업, 같은 위험 속에서 또다시 누군가를 잃을 가능성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정원의 마음을 밀어내면서도, 사실은 자기 마음을 부정한다.

최현수는 여전히 과거를 완전히 놓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원의 고백에 흔들릴 만큼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갈등이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상실을 피할 것인가. 그는 아직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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